‘쓰레기부부’라고요?…김기동·한명옥씨
먼동도 채 트지 않은 이른 새벽. 김기동씨(51)는 일어나 갈퀴와 부대를 챙긴다. 한명옥씨(45)도 주섬주섬 장갑이며 모자를 챙겨 일어선다. 부부가 나선 곳은 집 앞 대청호. 모터보트에 몸을 실은 두 사람은 밧줄이 달린 두레박으로 페트병이며 유리병들을 건져내기 시작했다. 물 위에 떠다니는 스티로폼을 건져올리는 한씨의 손길이 바쁘다. 해질 무렵, 보트 가득 쓰레기 자루를 싣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국내 최초의 부부 수질감시원, 김기동·한명옥씨 부부다.
“이곳은 제 고향이에요. 피라미 잡고, 두 손으로 떠먹던 맑은 물이 오염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죠. 하루 종일 쓰레기를 건져내고 나면 몸은 고되지만 마음만은 뿌듯합니다”1980년 대청호가 생기며 김씨의 집은 물 속에 잠겼다. 실향민이 된 김씨는 대처로 나가 엿장수며 뻥튀기 장사로 전전하다 지금의 아내 한명옥씨를 만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렵게 폐가 한 채를 구한 두 사람은 집수리를 위해 흙이며 수숫대를 찾아다니다 몰라보게 변해버린 대청호를 발견했다.
“쓰레기장이 따로 없더군요. 상류에서 떠내려 온 농약병에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빈병, 스티로폼이 가득했지요. 당장 다음날부터 집게와 비닐부대를 들고 나섰어요.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더군요”20년간 계속된 김씨의 쓰레기청소는 그렇게 시작됐다. 돈벌 생각 없이 아침부터 밤까지 쓰레기만 줍고 있는 남편을 향해 부인 한씨는 불만도 품고 화도 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한씨도 팔을 걷어붙였다. 폐품 판 돈으로 배도 한 척 마련했다. 사비를 털어 분리수거함도 5개 세웠다. 깨진 유리병에 베이고 낚시 바늘에 찔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쓰레기를 태울 때면 펑펑 터지는 부탄가스통에 화상을 입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낚시꾼들에게 잔소리도 많이 했지요. 멀거니 쳐다보다가 쓰레기 치우는데 얼마나 받느냐고 물어보더군요. 돈이요? 수질감시원 하는 덕에 둘이 합쳐 한달에 20만원 받습니다. 그것으로는 배 기름값도 안돼요”부부가 건져 올리는 쓰레기는 1년이면 4t 트럭으로 250대분이 넘는다. 깡통, 페트병, 유리병 등 종류별로 구분해 놓으면 자원재생공사에서 수거해간다. 한대 가득 실어 보내야 폐품 값으로 6만원이 떨어진다. 부부는 그 돈을 독거노인이나 불우이웃들에게 보낸다. 인근 성심 양로원에 몇 년동안 익명으로 쌀을 보낸 사람도 그들이다.
“우리 식구 밥 굶지 않으니 그걸로 됐죠. 아들 둘 모두 장학금으로 대학다녀주니 고맙고…. 나이들면 양로원 하나 세워 오갈데 없는 노인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그래야 제 마음이 좀 더 편할 것 같습니다”부부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90년 수자원공사는 김씨를 대청호 수질감시원으로 위촉했다. 2년 뒤에는 한씨도 수질감시원으로 위촉됐다. 지난해에는 ‘올해의 환경활동가’로 선정돼 환경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지난 23일에는 오운문화재단에서 선정하는 우정(牛汀)선행상을 받기도 했다. “상은 무슨…”이라던 두 사람은 “장마가 오기 전 바닥에 깔린 쓰레기를 건져올려야 한다”며 수줍어했다.
(경향신문) 최명애기자 2003년 4월 27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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