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의 소나기, 2007년 8월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는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그 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허, 참 세상일도.."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윤초시 댁도 말이 아니야,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남폿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증손(曾孫)이라곤 계집애 그 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 애 둘 있던 건 어려서 잃어버리고.."
"어쩌면 그렇게 자식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서 윤초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황순원, 단편소설(1953) 소나기 中>
<여름 소나기>
창문 넘어 내리는 가랑비는 실바람에 실처럼 흩어져 대지를 촉촉히 적시고, 어느새 내 마음의 은빛 물비늘은 맑게 개어 있다.
한 여름의 절정에 이른 무더위를 식히는 소나기, 지금 나에게 있어 두가지 단상으로 기억된다.
첫째, 풀빛 풀내음처럼 싱그러운 유년의 추억, 그 아련함..
"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워 주고파..
냇가에 고무신 벗어 넣고,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고..
언제쯤 그대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 가슴은 두근 거렸죠.
흐르는 냇물 위에 노을빛 분홍빛 물들이고, 어느새 구름사이로 저녘 달이 빛나고 있네..
노을빛 냇물 위로 예쁜 꽃모자 떠가는데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슬픈 사랑 얘기.."
<예민 작곡 및 노래, 어느 산골소년의 슬픈 사랑 이야기>
<생비량 소류지>
둘째, 우중출조니 새물찬스니 소나기입질이니, 언제나 우리네 꾼들에게 빠질 수 없는 비와 당신의 낚시 이야기..
내일이면 추억이 될 아름다운 낚시이야기,
오늘도님과 군북휴게소에서 접선을 하고 커피한잔의 여유를 부릴즈음 슬유님과 연락이 닿았다.
먼저 생비량 소류지로 장소를 정하고, 밤새 정나누기에 필요할 안주거리를 장만하러 잠시 마트에 들렀다.
오늘도님께서 소주 5병을 주섬주섬 담길래, 오늘 낚시는 포기해야겠네요? 라고 묻자..
그러면 한병만 뺄까요?
(눈치를 보니 5병도 절제하신 듯 아쉬움이.. ㅋ)
<생비량 소류지 상류 풍경, 연일 퍼붓던 장대비로 온통 흙탕물이다>
목적지에 도착,
아차 만수위, 연일 퍼붓던 장대비에 저수지 전역이 흙탕물이다.
잠시 고민에 잠겼지만 다른 곳도 마찬가지 일거라는 결론에 도달, 결국 이 곳에 눌러 앉기를 작정하고 각자의 포인트에
대를 드리운다.
잠시후 비새님과 비안새님의 우정출연이 있었지만, 아쉽지만 짧은 안부와 함께 빗물에 장화만 씻고서 금새 떠나신다.
장화 씻는다는 핑계로 먼 걸음 해주신 두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오늘도님 낚시자리>
이어 슬유님도 도착하셨다.
해질무렵 각자 대편성을 끝내고, 늦은 저녘시간이다.
한병, 두병 권커니 작커니.. 어느새 소주병은 하나, 둘 힘 없이 쓰러지고 있다.
밤낮 없이 질세라 울부짖던 매미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반짝반짝 빛나던 별빛 대신, 잔뜩 흐린 까만 밤하늘을 깜박깜박 수 놓는 반딧불이 한여름밤의 정취를 더해가고 있다.
내일이면 추억이 되어버릴 오늘 이 밤..
한편의 낭만스런 소설 8/14페이지를 "한 여름밤의 주낚 이야기"로 주렁주렁 엮어가고 있다.
이렇게 산골마을의 밤은 깊어 새벽으로 치닫고 있다.
<내 낚시자리>
적당한 취기가 졸음을 몰고 올 때쯤, 각자의 낚시 자리로 돌아가 세월 낚시에 몰입..
따문따문 올라오는 크고 작은 붕어들의 야간 행군에 어느새 졸음도 달아나 버렸다.
조금 옆 가까운 곳에서 참붕어를 미끼로 쓰고 계신 오늘도님의 자리는 조용하다.
전화를 걸어 새우를 나눠 드릴려니, 참붕어 모드로 새벽까지 버틸 모양이시다.
<슬유님 낚시자리>
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이른 새벽, 제방권에서 요란한 불빛과 함께 등장하신 조사님들은 길 건너에서 떡밥낚시에 열중이시다.
흐릿흐릿한 하늘색 물빛 속에서도 연신 씨알 굵은 붕어를 잘도 낚아내신다.
밤새 참붕어로 큰붕어를 유혹하시던 오늘도님, 아쉬움이 많이 남으신 듯..
그리고 저 멀리 슬유님, 옥수수 미끼로 8치급으로 몇수 하신 듯하다.
<밤새 나를 즐겁게 만들었던 녀석들>
여전히 여름햇살은 밤낮 구분 없이 따갑기는 마찬가지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아침햇살이 미간을 찌푸르게 할때쯤 쉼표를 찍었다.
낚시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 갈 때면 어느 꾼, 그 어떤 조과라도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처럼 아쉬움이 남기에 내일이 기다려지는 것이 아닐까..
<생비량 소류지 붕어>
내일이 있어 행복한 우리는,
의령읍내 소고기국밥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그래도 아쉬웠던지 군북휴게소에 들러 또 커피를 한잔씩 나눠 마시며..
무려 1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이야기 꽃을 마져 피우고서야, 비로소 악수를 건낼 수 있었다. ^^*
<아쉬움을 뒤로한채 대를 접고 계신 오늘도님, 늘 고맙습니다>
"생비량 소류지"라는 곳,
내 기억속에는 "2007년 8월 14일, 그들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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