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경남 외 지역 낚시다녀 온 이야기 적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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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향 (2008-08-15 20:34:49, Hit : 3257, Vote : 282)

휴가 -춘천호-

일요일,
드디어 낚시를 하러 가는 거다.
그것도 처음으로 좌대낚시를 시도해 보기로 한다.

서울을 벗어 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길치 임은 분명하다.  ㅡ.,ㅡ
경춘가도를 달려 가리라 했던 기대와는 달리 어딘지도 모를 곳을 헤매다 어찌되었던 의암호에 다다랐다.

의암호를 따라 돌아 어느새 춘천댐을 가로질러 지나 화천으로 방향을 잡아 가다 보니 '인람리'라는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온다.
그 샛길을 따라 시멘트 포장된 농로를 한참 들어가니...

그다지 마음이 내키질 않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 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시길래 인사를 드리니 저 송전탑 뒤로 돌아 들어가면 낚시를 하는 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 있단다.
도대체가 얼마 만이던가.
낚싯대를 펴 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하다.
이제 적어도 이틀 밤은 여유로움을 만끽할 테다.
지난 저녁을 먼저 와 자리를 잡고 계시던 노부부와 함께 했다.

삼십 여 년을 공직 생활을 하시다 은퇴하신 지 벌써 십 년이 넘으신다는데 워낙 정정하시기만 하다.
많은 말씀을 나누고 또 조용히 함께 찌바라기도 한다.

사평님의 표현대로 이 넓은 호수에 내 낚시는 한 점에 불과하다.

실컷 별과 달을 구경하고 아침을 맞는다.
참 오랜만에 물에 비친 달과 별, 그리고 케미컬라이트를 배부르도록 마시고 또 마신다.
이제 낮낚시를 즐길 차례다.
할머님께서 기어이 아침을 차려 내어 주신다.
연신 '얻어 먹는 밥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법'이라며 재차 권하신다. ^^

이름 모를 꽃 구경도 하며 맑고 또 푸른 하늘을 맘껏 즐기며 노부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을 나누다 춘천 시내를 함께 다녀 오기로 한다.

춘천의 명동거리라 불리는 곳에 있는 시장을 돌아 다니고 몇 가지 필요한 것들을 사고 난 후 돌아 오는 길에 만난 이정표.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102보' 불리는 전국 각처에서 징집되어 강원도 지역에서 군생활을 할 청년들이 사나흘 머물러 각자의 군대로 배속되어 가길 기다리는 곳.

장을 봐 돌아 오니 어르신께서 얼굴에 환한 웃음으로 노마나님을 반기신다. ^^
나는 춘천 닭갈비를 준비하고...
다행이 양념이 그리 맵지 않고 살코기가 연하다며 흡족해 하신다.

이틀 째의 밤은 그야말로 불지옥을 방불케 한다.
그 서막은 낚시 중 바라 본 기이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넋이 나가기라도 한 듯 찌를 바라보다 문득 귓전에 맴도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이마끝엔 여전히 별빛들이 초롱초롱하기만 한데 저 오른쪽 호수 너머엔 은빛 커튼이 쳐진 듯하고 그 너머론 샤워기를 세차게 틀어 놓은 듯한 소리가 번져온다.

한동안 멍하게 상황을 살펴보다...  앗!
미친 듯이 파라솔을 꺼내 별빛아래서 조립을 하는데 손이 마음같이 움직여 지질 않는다.  ㅡ,.ㅡ
허겁지겁 땅에 파라솔을 쑤셔 박고 나니 폭우가 쏟아진다.

휴~~~
깊은 숨을 내쉬어 보지만, 쏟아지는 비는 비라기 보다는 차라리 우박이라 불러야 할 테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저 앞에서 별들이 비웃는다.  ㅡ,.ㅡ

멋쩍게 낚시를 하지만 얕은 수심에 세운 찌는 미동을 않는다.
하긴 몇 마리 되지 않는 붕어들도 꽤나 놀랐을 테다.

그래,
차라리 푹 쉬고 새벽에나 시작해 보자 하고 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통수에서 번개가 떨어진다.  ㅡ.ㅡ;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차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하지만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는 마치 주먹으로 내리치듯 차 지붕을 때린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굉음을 일으키는 천둥은 마치 호수를 뒤집어 엎을 기세이고 머리 위를 날아 다니는 번개는...

잦아 든 빗속에 노부부는 기어이 아침을 들고 가라시며 자신들의 텐트로 팔을 이끈다.
서울까지 가는 동안 길가에서 아침을 사먹을 바엔 차린 건 없지만 밥이라도 배부르도록 들라시며 붙잡으시니 고맙게, 많이 먹어 드릴 수 밖에...
어찌나 서운해 하시던지 춘천을 벗어나면서까지 다시 돌아갈까 몇 번이나 망설이기도 했다.

장 보러 가는 동안 노마나님의 말씀으로는, 어르신께서 워낙 성정이 까다로운 분이시라 심지어는 가족분들과도 겸상을 꺼리신다는데 총각이 무척이나 맘에 드셨나 보다 시며 웃으신다.
(알고 보니 같은 성씨에 본관도 같은 조상을 두고 있는 분이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지난 사흘을 추억하며 소주 한 잔을 스스로에게 권한다.

춘천댐을 나서 서울로 오던 날,
무척이나 많은 비가 또 내렸었는데 어르신들께선 별 탈이나 없으신 지...

내일 다시 가서 인사 드리면 무척이나 놀라실 테지... ^^

어르신들의 깊은 정을 받고 나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그토록 해보고자 했었던 좌대낚시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아마도 혼자 하는 좌대낚시 보다는 몇 곱절이나 즐거웠던 낚시가 아니었던가 싶다.

일소일소 (2008-08-15 21:14:04)

큰 붕어를 만난 만큼이나 좋은 이웃을 만나셨네요.
글솜씨가 빼어나서 아름다운 춘천호 보다 더 아름다운 조행기를 봅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분홍색의 야생화는 부처꽃으로 보입니다.
건강하십시요.

월향 (2008-08-15 23:59:41)

선배님께서 먼저 글을 남겨 주시니 민망하고 또 고맙기만 합니다.
부처꽃이라는 이름이면 그 연유도 있겠군요, 한 번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곱치 붕어 한 수에 잉어 치어, 누치 치어들로 눈만 바쁜 이틀 밤이었습니다. ^^

왕짜집기 (2008-08-16 00:00:30)

좋은 이웃을 만나 조행이 더욱 빛나 보입니다...
요 몇일 폭우는 정말 경계해야할 정도 인것 같군요...모처럼 시원한 배경 잘 봅니다.

만땅 (2008-08-16 06:00:49)

시리도록 아린 사진,
버겁도록 고운 인정,
향기 가득한 조행기.

70이 넘도록 한 번도 경험치 못한 운치,
'스스로테 권하는 소주 한 잔'

많은 것을 생각키우게 하는 여행글 너무 고맙습니다.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해안도시 (2008-08-16 10:43:50)

잘 보고갑니다

빈소쿠리 (2008-08-16 11:22:46)

시원한 화보 고맙습니다.

송애 (2008-08-16 12:02:55)

멋진 낚시 여행이였네예...
호젓한 물가에서 뜻밖에 좋은분들을 만나셨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셨네요.
오래도록 기억속에 자리잡을 낚시 여행이였겠습니다.
아름다운 그림들과 아름다운 글들 잘보고 갑니다.

멀더 (2008-08-16 21:25:26)

아~ 저는 왜이리 이 글을 읽으니
가슴속에서 '몽갈~ 몽갈~' 무엇인가
따쓰한 기운이 올라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월향님과 그 노부부님을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네요.

월향 (2008-08-17 14:09:28)

여러 선배님들의 고마운 댓글에 조금 쑥스럽습니다.
그 어르신 연세가 만땅선배님 보다 두해 연상이시더군요.
오늘 다시 뵙고 왔습니다.
그 얘긴 또 올립지요...

(2008-08-20 18:39:45)

점찍은 이야기가 상당히 아름답습니다. ^^
가슴 따뜻해지는 조행기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겨울바다 (2008-08-20 19:05:16)

조행기가 너무 이쁘네요....

사진도 멋지고 정겨운 이야기가 저가슴에도 콩콩 와 닿는것 같읍니다.

역시 민물낚시의 매력운 무한대 인가봅니다..

멋진 인연에 멋진 날씨 멋진 휴가 보내시고 오셨군요 쪼매 부럽습니다....^^

진영맨 (2008-08-21 09:00:31)

살아 계시나 보네요...
누구신지는 몰라도....조행기 잘 보고 갑니다.///

빙그레 (2008-08-21 22:00:58)

서울에 계시는줄 몰랐읍니다
가슴에 와닿는 조행기 잘 보았읍니다.

무인 (2008-09-10 11:25:57)

경치구경 잘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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