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 저수지의 교훈
어처구니없는 일이 울산에서 또 벌어졌다는 소식(1월 7일자 본지 1면)이 자연환경을 아끼는 많은 시민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농업기반공사(이하 ‘농기공’)가 지난해 울주군 청량면 ‘율리 저수지’ 제방 신축공사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바람에 저수지의 자연생태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말았다는 것.
농업기반공사는 농업용수를 제대로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지난해 초부터 12월말까지 1년 동안 11억2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율리 저수지에 제방을 새로 쌓는 공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농기공은 실로 어안이 벙벙해지는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즉 같은 해 8월부터 저수지의 물을 빼내면서 저수지 바닥의 모래층이 드러날 정도로 유속(流速)을 너무 높인 나머지 상당량의 퇴적물과 뻘층이 빠른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는 것. 또 마을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해도 농기공측은 이를 외면한 채 밀어붙이기 식으로 일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곳에 집단 서식하던 미꾸라지, 개구리는 물론 붕어 등 민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동식물들이 떼죽음을 당했으며, 저수지에서 울산시농업기술센터에 이르는 약 3㎞의 하천이 이들로 뒤덮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농기공 관계자는 “일부가 떠내려간 것은 사실이지만 기초공사를 위해 물을 완전히 빼낼 수밖에 없었다”며 그 불가피성에 대해 해명했다. 그러나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이곳 주민들의 시각으로 볼 때 그 결과는 ‘실로 참담하다’는 표현 외에 달리 더 할말이 없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자연생태계(自然生態系)의 복원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율리 저수지는 맑은 공기에다 수서식물(水棲植物)이 우거진 빼어난 경관으로 적지 않은 시민들이 낚시를 즐기거나 쉬었다 가는 쾌적한 휴식공간 노릇을 해 왔었다. 한시적이나마 쉴 자리를 잃게 된 시민이나 이들을 대상으로 영업해 오다 졸지에 생계 터전이 좁아진 율리마을 사람들로서는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연생태계를 온전히 지키기 위한 노력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그 범위를 점차 넓혀 가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생태계 복원을 위해 이미 쌓았던 제방까지 허물고 우리나라 몇몇 도시에서도 이 같은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 프랑스나 미국 등지에서는 엄청난 돈을 들인 댐이라도 새로 고쳐짓지 않고 송두리째 허물어 자연을 되살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기반공사가 눈앞의 실리만을 좇아 무리한 공사를 서둘렀다면 이는 무지(無知)에서 나온 행위이자 자연보호에 역행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농기공이나 울산시는 앞으로 펼칠 각종 개발사업에서 율리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각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울산매일 2002.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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