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종붕어의 한강 여행기
나는 붕어예요. 날씬한 몸매에 금빛 비늘이 반짝이고 아랫배가 통통한 암컷 토종붕어이지요. 작년인가요. 낚시연합회에서 토종붕어 자원을 늘리자며 놓아줬는데 홍수 때 행주대교 근처까지 떠내려왔답니다. 이제부터 내가 태어난 청평으로 가려고 해요.
신곡수중보로 가로막힌 이곳 바닥엔 시커먼 뻘이 두텁게 깔려있어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지요. 우리처럼 바닥의 유기물을 걸러 먹는 물고기에겐 고역이에요.
서강대교 그림자가 드리워진 걸 보니 밤섬에 다 왔네요. 검정말과 붕어말의 향긋한 냄새가 벌써 코끝을 간지럽혀요. 한강 하류에 수초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요. 섬 주변의 얕은 물도 반갑지요. 물이 따뜻하고 물벼룩도 많거든요. 할머니는 “한강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옛날 동네”라고 늘 말씀하셨죠. 매년 봄 우리는 여기서 비밀스런 의식을 거행한답니다. 그 생각만 하면 벌써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라요. 밤섬 안쪽에 모래와 뻘이 깔린 웅덩이가 있는데, 여기서 알을 낳아요. 수온이 18도쯤 오르는 밤 사이 수초에다 알을 붙이는데 떼지어 몰려다니다 몸을 눕혀 물탕을 튀기고 한바탕 난리를 치지요.
다 아는 얘기라고요? 이제부터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을께요. 우리는 거의 모두 복제붕어랍니다. 복제양 돌리나 복제소 영롱이처럼 우리의 유전자는 엄마 것과 똑 같아요. 실은, 우리에겐 아빠가 없어요. 엄마도 그렇게 태어났대요. 한강뿐 아니라 전국의 붕어가 거의 그래요. 당연히 붕어 대부분은 암컷이지요. 아마 낚시꾼들은 알거예요.
짝짓기 철이 되면 우리는 잉어 산란장에 가요. 잉어 아저씨의 정자가 필요해서죠. 잉어 정자는 난자가 발생하도록 방아쇠를 당기는 구실만 해요. 우리에게 잉어 피가 섞였다고 착각하면 안돼요. 어류학자들은 이걸 자성발생·처녀생식·단성생식 따위로 부른다는데, 어떻게 이런 희안한 번식방법을 택하게 됐는지는 사람도 잘 모른대요.
제 생각에는 붕어의 개척정신이 이런 번식전략을 낳은 것 같아요. 전국 방방곡곡에 붕어 없는 곳은 없잖아요. 섬에도 붕어는 있으니까요. 억척스럽게 서식지를 넓히다 보니 수컷이 늘 곁에 있기 힘들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암컷 혼자 번식하는 길을 택한 것 아닐까요.
이렇게 복제를 하다 보니 어느 저수지나 수로에는 색깔과 모양이 같은 붕어가 모여 살게 됐지요. 복제됐으니 똑같은 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모든 붕어가 이런 건 아니고, 일부 붕어는 다른 동물들처럼 암수가 짝짓기를 해요. 그런 `정상' 붕어와 우리는 염색체의 숫자가 다르지만 서로 짝을 짓기도 해요. 복잡해서 머리가 다 어지럽네요.
동호대교를 지났으니 코를 막아야겠어요. 중랑천 물이 들어오거든요. 작년 이맘 때 중랑천에서 잉어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데, 왜 이렇게 더러운 물에 몰리는지 모르겠어요. 한강변을 콘크리트로 밋밋하게 만들어서 알 낳을 곳이 없어서인가봐요.
이제 잠실수중보에 다 왔군요. 보에 막혀 개울 상류처럼 물살이 빨라요. 얼마 전 이곳에서 은어가 한 마리 잡혀 화제가 됐다더군요. 한강이 살아났다고.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한 마리 갖고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은 아니잖아요? 한강에는 정작 큰 비극이 일어나고 있어요. 토종붕어가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 거슬러오는 동안에도 우리 동료는 거의 보지 못했어요. 대신 중국말을 하는 붕어가 많이 눈에 띄더군요. 3년 전쯤부터 중국산 붕어가 수입돼 낚시터에 방류됐는데, 번식한 새끼들이 빠져나와 한강에 퍼졌어요. 요즘 한강 붕어 열에 여덟마리는 중국산입니다. 그 전에는 일본에서 들여온 떡붕어가 그 큰 덩치로 으스댔는데….
제 힘으로 잠실수중보를 거슬러 오르는 건 포기해야겠네요. 아무 쓸모 없는 어도는 무엇하러 만들어놨는지. 수중보 위에는 콘크리트 호안도 없고 살기 좋다던데. 참, 한강 하류에서 좋아진 게 있어요. 악명 높은 외래종 블루길과 배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아요. 그 많던 블루길은 눈을 씻고 봐도 없고 배스만 몇 마리 있었어요. 아무리 흉포해도 흐르는 물에서는 맥을 못추나봐요. 메기 아저씨가 배스를 쫓아내는 모습도 봤어요. 하지만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 가봤던 친구한테 들었는데요, 여의못에는 배스들이 바글댄대요. 배스 입보다 큰 가물치와 붕어를 빼고는 못에 넣은 20종의 물고기들을 깡그리 잡아먹고 나서, 이제는 굶주린 배스들끼리 서로 눈을 번득인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요?
붕어처럼 사람에게 친근한 물고기가 있을까요. 붕어찜으로 입맛을 살려주고 낚시꾼에게 손맛을 선사해 왔는데, 이제 수입 붕어 때문에 희귀어가 될 판이에요. 토종붕어 좀 살려주세요.
<출처 : 한겨레신문 조홍섭 기자ecothink@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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