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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골

(2005-07-12 13:43:22, Hit : 2855, Vote : 127)

http://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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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日紅(백일홍)

<제실의 백일홍 사진>

출근길에 백일홍 한그루 핀것이 유난히 눈에 띈다
평소 보도블럭 위로 심어져 있는것을 예사로이 봐 왔는데
모처럼의 햇살받고 핀 모습에서 마음까지 화사하다.

운전중 꽃을보면 핸들잡은 기분이 가벼워 지는데
나는 장마철 운좋게도 그걸 만난 것이다.

백일홍에 대한 나의 애정은 남다르다.

어릴적 내가 살았던 집은 古屋 이었는데
마당과 집뒤로 몇그루 있어 것신하면 공부 안하고 나무에 기어 올라가 놀았다.

이 나무는 가느다란 가지를 잡고 매달려도 잘 부러지지 않고
활처럼 휘어지는것이 낭창낭창 하며 참 재미있었는데 요즘으로 말하자면
이름이 뭔지는 몰라도 공터에다 그물같은 것을 쳐놓고 애들이 껑충껑충 뛰고 노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

또 심심하면 조각칼로 나무둥치에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친구 이름을
한명씩 새기곤 했었는데 이젠 모두다 희미한 이름이 되었다.
영숙이. 은희.미숙이.숙자.(숙자는 두명이었음...ㅎㅎㅎ)

저 꽃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것말고도 또 있다.

어린시절 저꽃 처음 피울때쯤이면 농한기다 .
어른들이 이르기를
"저 꽃은 일년에 세번 피는데 세 번째 피면 추석이고
또 추수하는 시기라 새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추석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어서 세번째 꽃피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요즘이야 농한기 라는게 없어졌지만 그땐 거의가 유기농법이라
순수하게 사람의 손으로 농사를 지었다.
농사로 연명하는 것이 근본이었으니 농부들의 수고는 그야말로
"태어난 것이 죄다" 했을 정도로 힘들었다.

어릴적 이웃 어른 한분으로 부터 이런말은 들은적이 있다.
" 일에너무 지쳐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고
나는 속으로... "일이 얼마나 고달프면 저런말씀을 하실까" 하며
커면 농사일을 절대 안해야지 마음 먹었고 지금도 나는 농사일을 안한다.
다 팔아 묵고 내 계획대로 되었으니 "참 잘한 짓이다" 성공했다...ㅎㅎㅎ

년중무휴 비스 무리한 그들에게는 농사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 얼마나 좋았는가.
지금으로 말하면 달력에 빨간 날이 항 거석 하다고 하겠다.

한여름의 햇볕아래 벼는 검푸르게 자라고
농사일로 그을리고 지친 농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멍개탕도 해 먹고
또는 냇가에서 천렵을 즐기면서 잠시 여름의 한가함을 즐길수 있었던 것이다.

여름한때 내리 퍼붓는 소나기를 피해 농막에서 농주한잔 걸치고
몽침이 배게 하여 스르르 잠이 들면 눈가엔 어느새 눈물인지 빗물인지
물기가 서린다.
삶의 고달픔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게 없다고는 하겠지만
그땐 우리네 윗대 어른들께서는 숙명처럼 그렇게 고생하며 사신 것이다.

나는 저 꽃의 본명이 뭔지 모르고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어릴적 들은바 대로 백일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나무> 또는
도장파기 좋다고 해서 <도장나무>라 불렀다.

고목이 된 백일홍이 옛집 주변으로 몇 그루 있었는데 지금은 베여지고 없다.
베여지기전 까지만 해도 여자친구 이름이 어럼풋이 남아 있었는데
이젠 실물도 이름도 영원히 사라졌다.
나의 아련한 추억까지 함께 싹다 베어갔다.

저 나무는 결이 곱고 매끈하고 멋 들여지게 휘어지는것이 특징이다.
가지가 하늘로 뻗지 않고 나즈막이 세상을 품어 안을듯 땅 아래로 처지면서
여인의 치마폭을 연상케 하며 품어안는 편안함을 주는 여성나무다.

소나무는 높은 곳에서 독야청청 해야 제 멋이듯 저 나무는
사찰이나 제실, 혹은 古家 옆에 안 사람처럼 있어야 운치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저 나무를 길가에서도 많이 볼수있다. 흔타..
흔한 것은 헤프다.

세상이 헤프서 그런지 저 나무마저도 세상의 헤픈 물결을 타는것 같아서
마음 씁쓸하다...

- 느티골이 -

우린하나 (2005-07-12 13:54:23)

선배님 참으로 운치가 있습니더
낭창한 나무를 타는것과 뜨락에서 뛰어 노는 풍경을 요즘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알까나 모르겠네예.
낚시를 하다보면 마을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 피어 오르는 풍경을 아직도
볼수 있어서 좋은데 얼마나 볼수 있을란지요.
풍경이 그려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으니 산딸기주 한잔 주십시요. ^^

빙그레 (2005-07-12 13:58:32)

백일홍 고거 옆구리 간지럽히면 사시나무 떨듯 디비꼬고 난리 칩니다
함 해보이소

찌한마디 (2005-07-12 14:29:48)

장마가 지나고 나면 따뜻한 햍볕도 비치리라 생각 합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

나무꾼 (2005-07-12 14:43:50)

묵직한 글 올려주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때 그나무에 새겨진 여자분들은 다 어디 가셨을까요?

해파리등뼈 (2005-07-12 15:10:42)

목백일홍이라 하지요
화무십일홍을 무색케 만드는 나무..

정식명칭은 배롱나무 입니다.
도금양목일꺼에요 아마..

간지럼나무라고 부르고 일본에선 사루스베리(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라고 합니다.

선배님의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낭만풍폭 (2005-07-12 15:21:30)

백일홍..
옛사랑이 떠오르네요. 쿠쿠.. ^^*

콩삼 (2005-07-12 18:15:22)

백일홍에 얽힌 옛추억이 어린 한편의 아름다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음악선택도 정말 탁월하시구요...
근데...늘 선배님의 추억이야기에 빠지지않는 수향댁이야기는...
오늘은 쪼매 애틋한 스토리로 끝을 맺네요...ㅠㅠ

(2005-07-12 18:33:43)

백일홍을 바라보는 선배님의 애틋한 마음 글로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미소 (2005-07-12 21:39:35)

선배님 백일홍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 보다 재미있는것은 한잔묵고 이상한(?) 이야기 할때가 더 재미있고
평소의 모습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좋은글은 아주 가끔올리시고 평소 성격대로 글 올려주세요. ㅎㅎㅎ

울붕어♡ (2005-07-12 22:08:22)

운치 있습니다.^^
여유로운 글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민물새우 (2005-07-12 22:36:49)

그 나무에 이름이 쓰여졌던 여자분들 지난번 꼬맹이 동창회 떄 만났다고 하신것 같은데요??
그리고... 책 한권 내시라니까요.

대물스토커 (2005-07-12 23:23:45)

백일홍에 대한꽃말이
“희박해지는 우정에 대한 근심. 떠나간 님을 그리다. 죽은 친구를 생각하다”이라는데...
아무래도 선배님의 요즘의 심정이 백일홍의 이야기속에 많이 함축된듯합니다

옛날맛이 안나는 사이다/ 옛날의 버스타는 맛이 안나는 시골길/20년전 원도에서
느꼈던 섬사람들의 인정 그러나 지금은.../
추억에 관한한 역시 사람들 머리속의 컴퓨터는 업그레이드를 절대 거부하나 봅니다
건강하세요 선배님...

일소일소 (2005-07-12 23:25:24)

농사 일은 요즘 흔히 말하는 3D 업종을 다 종합한 직업이라고
할 정도로 힘이드는 일이지요.
우리의 부모님들은 모두가 그렇게 힘든 삶은 사셨지요.
그라고 느티골님은 우짜마 한참에 다섯명씩이나...
대단하신 능력은 아직도 가지고 계시지요?

바람개비 (2005-07-13 08:09:28)

아~~~ 그 꽃이 백일홍이군요.
저도 벌초하러 가면서 많이 본것 같습니다.
스토커님의 꽃말을 들으니, 이해가 가는군요.

늘 따뜻한 맘을 지니신 선배님은
희박해지는 우정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으셔도 될것 같습니다.

환상 (2005-07-13 08:41:28)

선배님의 백일홍에대한 추억 잘 읽었습니다.
백일홍에대한 새로운 의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이소...

디딤돌 (2005-07-13 14:40:54)

그렇네요.
우리아파트 화단에서도 요즘 흔하게 볼수있어 옛 정취를 망각하네요.
뭐든 좀 부족해야지 넘쳐나면 헤프지예(사랑빼고예.ㅎㅎ).
선배님도 건강하이소.

휘봉 (2005-07-14 08:44:32)

선배님의 글을 대할 때마다 마음의 풍성함을
느낍니다.
글에서 풍겨나오는 내음에 취해봅니다.
선배님의 따뜻한 가슴을 닮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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