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02-11-20 (특집) 기획.연재 08면 07판
[생태기행] (11) 양양 남대천 연어들
늦가을 바람만 스산하던 양양 남대천이 술렁인다. 연어가 돌아왔다. 3∼4년간 저 먼 바다 오오츠크해와 베링해를 무대로 수만㎞를 떠돌던 연어들이 파란의 삶을 마감하기 위해 고향으로 온 것이다. 강물은 쉼없이 흘러가고 고향도 덧없기는 마찬가진데 연어는 어미가 그랬고 또 그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알을 낳기 위해 올해도 자기가 태어난 모천(母川)으로 찾아왔다. 예전에는 자연의 섭리에 따른 산란과 죽음으로 여행을 마무리했지만 이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연어가 거의 없다. 반쯤 인공으로 만들어진 어색한 고향이지만 연어는 결코 고향을 잊지 않는다.지난 여름 강원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태풍 루사도 연어들의 고향 냄새는 휩쓸고 가지 못했다.
연어를 만나러 강원도 양양 남대천을 찾았다. 우리나라를 찾는 연어의 70%가 이곳을 찾기 때문에 ‘연어의 고향’이라 손꼽히는 곳이다. 양양 남대천 외에도 강릉 연곡천,삼척 오십천,고성 목천,울진 왕피천과 전남 섬진강 등 전국 18개 하천에 연어가 올라오지만 개체수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연어는 바다에서 살다가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와 산란하는 모천(母川) 회귀성 어류로 일생 한번 산란하고 죽는다. 북위 40도 이상 찬물에 사는 냉수성 어종으로 크게 태평양산과 대서양산 연어로 나뉜다.
태평양산 연어의 종류로는 연어(일명 첨연어),곱사연어,왕연어,홍연어,은연어,시마연어,아마고연어 등 7종이 있으며 우리나라 하천에 올라오는 것은 연어와 시마연어 2종이다. 이중 시마연어는 송어를 가리키는 것으로 송어가 바다에 내려가지 않고 강에 남아서 성숙한 것을 산천어라고 한다. 우리가 요즘 남대천에서 볼 수 있는 연어는 첨연어다.
하지만 연어의 귀향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어서 대부분 연어잡이 선단이나 바다표범 등 천적에 희생되고 극히 일부만이 살아남아 남대천으로 돌아온다.
연어의 회귀는 1억분의1까지도 알아내는 놀라운 후각에 주로 의존하지만 이는 고향이 가까워지면서 발휘되는 것으로 그전까지의 기능은 어떤 기억회로에 의존하는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산란을 위해 남대천에 돌아온 연어는 크기가 대개 어른 허벅다리만하며 때로 1m가 넘는 큰 것도 있다. 알래스카에서 동해안으로 올 때까지 연어들은 암수 큰 차이 없이 거의 은백색을 띄지만 남대천이 가까와질수록 서서히 울긋불긋한 혼인색을 띄기 시작한다. 특히 암컷보다 덩치가 큰 수컷은 위턱과 아래턱이 길게 자라고 이빨도 크게 자라 험상궂다.
산란과 수정과정은 너무나 혹독해서 강에 돌아온 연어는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연어들이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것은 그무렵 생성된 몸의 생식선 때문으로 연어는 산란할 때까지 체내 지방의 90%를 소비한다고 한다.
연어들은 수심이 40∼80cm인 계곡 상류의 자갈이 깔린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 산란장을 마련하는데, 보통 지름 1m, 깊이 30∼50cm의 구덩이를 판 다음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바로 사정을 하고 자갈을 덮는다. 이때 연어들은 3000∼5000개의 알을 한군데가 아니고 여러군데 나누러 산란을 한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암수 모두 만신창이가 돼 일생을 마친다.
고향으로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아무 여한이 없다는 뜻일까.
어류학자들에 따르면 요즘은 강이 워낙 오염물질이 많이 유입돼 부영양화상태지만 예전의 민물은 바다에 비해 영양소가 적기 때문에 연어 어미들은 자신이 죽음으로써 어린 새끼들을 위해 민물에 자기 몸의 영양소를 풀어놓는 것이라고 한다.
본능일지라도 자식에 대한 어미의 사랑은 연어가 인간보다 훨씬 더 깊은 것 같다.
수정돼 태어난 연어의 치어는 50일쯤 모천(母川)에서 머무르면서 고향의 수온이며 냄새 등을 익힌 뒤 3월쯤 바다로 나간다. 연어는 북해도 수역을 거쳐 베링해와 북태평양에서 성장 회유, 2∼5년 후 동해안으로 산란하기 위해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남대천을 포함해서 우리나라에 돌아오는 연어들은 대부분 인공수정을 해서 방류한 것들이다.인간들이 연어의 생명활동 일부를 대신해주고 있는 셈이다. 자연산란은 수정률이 낮고 산천어나 은어,황어 등 천적들의 알 도둑질이 심해 회귀율이 낮기 때문이다.예전에는 동해안 하천은 물론 낙동강지류에도 많은 연어가 올라왔지만 각종 댐과 물막이보 그리고 환경오염 때문에 자연산란은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인공부화는 외국의 경우 18세기에 처음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시대인 1913년 함경남도 고원에 연어 부화장이 설립된 이후 인위적인 관리가 시작됐다. 1967년 강원도,경북,경남 내수면 개발시헙장에서 연어 인공방류사업을 본격 추진해 왔으며 본격적인 사업은 1984년 강원도 양양내수면연구소가 만들어지면서부터다.
현재 연간 2000만마리 치어를 방류하고 있으며 약 2%의 회귀율을 기록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연어를 인공수정시켜 방류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 어민들 소득향상을 위한 것으로 1993년 이후 공해상에서 연어잡이가 금지돼 자국내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서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에서 본 연어 인공부화 작업은 상당히 단순했다. 우선 연구소 작업장 둑 아래까지는 길게 두 줄로 그물을 쳐 놓아 연어들이 올라오다가 그물을 따라오면 조그만 가두리 그물망으로 모이게 해 놓았다.
가두리 그물망에서 연구원과 인부들이 연어를 한마리씩 잡아 암수를 구별해 분리시킨 뒤 암컷부터 한마리씩 몽둥이로 머리를 쳐 기절시킨다.
산란이 끝나면 어차피 죽을 목숨이고 인공부화작업의 편의를 위해서라지만, 수만 km 물살을 헤치고 고향을 찾아온 연어가 몽둥이에 맞는 것을 보면 연민의 정이 솟지 않을 수 없다..
기절한 연어를 컨베이어 벨트에 얹어 놓으면 작업장까지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암컷의 배를 갈라 오미자빛 붉은 알을 채집한 후 큰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 수컷의 우윳빛 정자를 짜서 채란된 알과 함께 섞는다.
인공수정 성공률은 약 95%, 60일이 지난면 알은 부화되는데 연구소에서 3∼4개월 정도 키워서 방류시킨다.연어 치어는 5월 하순까지 두어 달을 남대천에서 머문 뒤 바다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최근 이런 인공증식에 대해 외국에서는 비판을 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유전자 결손으로 연어의 번식력을 떨어뜨려 열등 연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한편 연구소 옆에는 인근 가평리 마을 부녀회에서 채란작업과 수정을 마친 연어를 모두 인수,냉동시키거나 말려서 구이와 포로 팔고 있다.
추수가 끝나 일거리가 없는 늦가을 주민들에게 짭짤한 소득을 안겨주는 것이지만 생명을 다해 산란하는 연어들 앞에서 왠지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양양=장지영기자
■국내 유일 연어박사 성기백씨
“연어만큼 환경에 민감한 물고기는 없어요. 인간의 환경파괴가 그만큼 연어에겐 치명적이라는 얘기죠”
강원도 양양내수면연구소의 성기백 수산연구관은 더많은 연어의 회귀를 위해서는 남대천 등 연어가 돌아오는 하천에 대한 보호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연어박사이자 복부압박법(연어의 배를 눌러 알을 채취하는 방법)보다 훨씬 부화성공율이 높은 복부절개법(연어의 배를 갈라 알을 채취하는 방법)을 국내에 처음 들여온 성연구관은 갈수록 연어가 돌아오는 하천들의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연구관은 “외국의 경우 연어가 돌아오는 하천은 보호구역으로 정해 사람들의 진입과 일체 어로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양양 남대천 등 연어가 오는 하천 18곳중 어느 곳도 보호구역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연어의 서식환경이 위험한 수준이다”고 밝혔다.
남대천의 경우 18곳 하천 중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보호수면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지난 6월 양양군에서 재지정을 하지 않는 바람에 현재 각종 오염과 무차별적 어로에 노출된 상태다.
양양군은 남대천 일대에 유료낚시터를 조성하고 바다와 연결되는 하구지역을 대규모 스포츠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연어회귀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실제로 보호수면 재지정 포기 이후 수많은 낚시꾼들이 연어 포획금지기간(10월11일부터 11월30일까지)에도 연어를 마구잡이로 잘아들여 문제가 되고 있다.
성연구관은 “현재 연구소에서 인공부화를 위해 연어를 잡는 기간만 연어 포획 금지기간으로 정해져 있는데, 이 기간 앞뒤로 남대천을 찾는 연어들이 자연산란을 할 수 있도록 연어를 포획금지어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공부화가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유전자 결손으로 연어의 번식력을 떨어뜨려 열등 연어가 나온다는 견해에 대해 성박사는 “물론 자연상태에서 산란과 부화 등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우리나라 어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인공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다”고 말했다.
성박사는 “인공증식 외에도 연어가 자연산란을 할 수 있도록 연어가 돌아오는 하천에 대한 보호수면 지정이 시급하다”면서 “연어가 돌아올 때 온국민이 갖는 관심만큼 연어가 사는 하천의 환경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양양=장지영기자
[한 겨 레] 2002-11-06 (정보통신/과학) 뉴스 28면
새끼연어 푼 하천 3년만에 풍어 기쁨
연어가 풍년이다. 울진 왕피천과 양양 남대천 등 이름난 연어 회귀천은 물론이고 영덕 오십천과 송천천, 섬진강 등에도 2000년부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던 연어가 올해는 무리지어 돌아오고 있다.
섬진강의 중류인 전남 광양시 다압면에서는 3일 3년째 모천을 잊지 않고 돌아오고 있는 진객을 맞아 ‘연어 손님맞이’ 행사가 열렸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과 맞닿아 있는 이곳에서는 1998년과 99년 섬진강환경어족보존회와 광주전남연어사랑모임에서 방류한 새끼연어들이 어른 팔뚝만한 어미연어로 자라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환경어족보존회가 강을 가로질러 쳐놓은 120m 너비의 그물에는 60~70㎝짜리 시마종 어미연어 20여마리가 잡혀 2000년 9마리, 지난해 17마리를 이미 넘어서고 있다.
이 단체의 장용옥 회장은 “지난해 돌아온 연어를 부산해양수산진흥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지난 98년과 99년에 섬진강에 보낸 연어와 똑같은 시마종이었다”며 “새끼연어 방류량을 300만~500만마리로 늘리면 해마다 이맘때쯤 섬진강 어디에서도 연어떼들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장관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내수면시험장은 올해 잡힌 연어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어종을 다시 확인할 계획이다.
왕피천·남대천·오십천·송천천 등 경북지역의 4개 하천에서는 지난달 말 현재 1200여마리의 연어가 잡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500마리에 비해 2.4배나 많은 것으로 사상 유례없는 풍어를 기록하고 있다.
3~4년 전부터 새끼연어를 대량 방류해온 경북 수산자원개발연구소 민물고기연구센터는 올해는 왕피천과 오십천의 수량이 풍부하고 하구둑도 넓게 형성되는 등 여건이 좋아 지난해의 3200여마리보다 많은 연어를 포획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청어목 청어과 연어속의 냉수성 어류인 연어는 우리나라 동해안 일본 사할린 알래스카 캐나다 등 북태평양지역에 7종이 분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어종은 참연어로 길이 50~80㎝, 무게는 2~7㎏에 이른다. 특히 3~4년 동안 먼바다에서 성장한 어미연어들은 산란시기가 되면 짝을 지어 태어난 하천의 물냄새를 쫓아 수만릿길을 거슬러 돌아와 배란과 수정을 끝낸 뒤 죽는다.
요즘 돌아오고 있는 연어들은 해당 지역 내수면연구소에서 인공부화를 통해 태어나 6~7㎝ 크기로 자란 이듬해 2~3월 방류된 뒤 5월 하순까지 우리나라 하천에 머문 뒤 알래스카와 베링해로 떠난 것들이다.
민물고기연구센터는 올해 3500마리의 어미연어를 잡아 인공부화시킨 뒤 내년 2월 300만마리의 어린 연어를 방류할 계획이다. 해마다 연어의 모천회귀 기간인 10월11일부터 11월31일까지는 연어포획 금지기간으로, 일반인들이 낚시 등으로 연어를 잡으면 수산자원보호령 위반으로 처벌된다.
구례/박화강, 김경애 기자 h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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