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낚시 21 독자 한마당 명조사의 귀천(歸天) 오양근<서울 강북구 수유동>
임종을 앞두고 "오형! 나 죽으면 손때가 묻은 저 칸반대 낚싯대는 꼭 관 속에 넣어 줘!"
아랫목에 놓아둔 낚싯대를 가리키며 마지막으로 한 유언은 나를 몹시 슬프게 했다.
몇 시간 뒤 명조사 박형은 귀천을 했다.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을…. 사람은 백살까지도 살지 못 하면서 천가지 근심을 품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기만 하다. 이분과 나와의 우정은 각별했다. 나이도 같고 취미나 사상도 동질적이고 더욱 친숙한 것은 바늘에 실 따르듯 삼십여 년 동안 언제나 둘이서 봄부터 늦가을까지 전국 방방곡곡 물을 찾아 붕어사냥(낚시)을 다녔다.
박형과의 낚시에는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들이 수 없이 많다. 내가 망인(亡人)의 고매한 낚시질을 써보고 싶은 충동은 요즘 낚시를 갈 때마다 느끼는 낚시터의 행태를 조금이라도 바로 잡아 보고픈 생각에서다.
이 분의 낚시품위는 선인에 가깝다. 즉, 한곳에 자리를 잡으면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언제나 칸반대 한 대에 외바늘 떡밥으로만 낚시를 즐기며 물소리도 내지 않는, 조용한 분이다. 그리고 낚은 붕어는 상처 없이 다시 놓아주는 성품은 속인으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미덕심리자였다. 강태공 보다 한수 위인 낚시도(道)라 할 수 있다.
때로 입질이 없고 심심하면 가까이 가서 빈정대는 투로,
"박형! 외바늘에 한 대만 고집하지 말고 낚시터의 환경에 따라 쌍바늘에 두 대 쯤 펴 보이소."
박형은 나의 이 말에 소리 없는 미소로 답한다.
"오형! 내가 어부요? 하루 물가에 앉아 무아의 경지에 빠져 보고 자연을 만끽하면 금상첨화지 뭣이 또…. 오형의 낚시철학이나 미학에 반해 같이 낚시를 다니는데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는교?"
낚시에 무슨 철학이고 미학이 있나? 큰 붕어만 낚으면 장땡이지….
"그래 오형이 쌍바늘에 두 대를 펴고 나보다 큰 놈 낚은 적이 한번이라도 있소?"
할 말이 없다.
또 한 가지 꼭 여기에 밝혀둘 박형의 인품은,
"박형! 앉았던 자리에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는데서 낚시나 했소? 오형! 사람은 떠난 뒤가 깨끗해야 하오. 날짐승인 기러기가도 날아간 뒤 그 자리에는 흙탕을 치지 않는 법인데 사람이 낚시하고 떠난 뒤를 보시오. 쓰레기 뿐이요. 환경을 짓밟아 못 쓰게 해놓고, 또 이곳을 다시 찾아오는 얌체꾼들…. 낚시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오."
지당한 충고요, 경고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 할 것 없이 한두 가지 흠이 있다.
이 분도 예외는 아니다. 이분의 귀천한 병은 술로 인한 '간경화' 때문이었다. 이 분만큼 막걸리를 즐기는 분도 없는 것 같다. 밥은 굶어도 막걸리는 마셔야 하니….
이제 올해의 물낚시도 파장이다. 바로 오늘이 명조사 박형이 귀천한지 십오 주기일이다. 귀천하기 얼마 전 박형이 나에게 수 없이 많이 했던 농담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오형! 황천에는 아무래도 내가 먼저 갈 것 같소. 그 곳에 가서 수려한 낚시터 옆에 아담한 정자를 짓고 기다리겠소. 같이 막걸리 마시고 낚시나 즐깁시다. 그리고 귀천하는 나에게 여비나 두둑히 내시오."
이것이 명조사 박형과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정담이었다.
보고 싶다. 꿈에라도….
이제 나도 칠순의 나이다. 박형을 만나기 위한 준비도 해야겠다. 낚시를 좀 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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